언제까지 단일민족으로 살 것인가?
몇 년 전, 대구에 이슬람 사원이 세워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격렬한 논쟁이 촉발됐습니다. 입주민과 종교 단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상황은 악화됐고, 대구 북구청의 공사 중지 명령과 법원의 판단이 이어지며 혼란이 지속됐습니다. 결국 부실 공사 문제가 불거지면서 공사 중지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 사건은 제주 예멘 난민 문제와 마찬가지로, 아직 이민자 문제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유럽의 상황을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국은 불법 이민자들을 르완다로 이송시키는 르완다 계획을 추진 중이고, 스웨덴은 이민자 유입 후 총기 범죄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주·난민에 관한 임시법』을 제정해 이민자들에 대한 장벽을 높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최소한 이민자 수용에 대한 한국인들의 거부감을 단순히 포비아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민자에 관대했던 나라들마저 등을 돌리는데, 단순히 두려움만을 원인으로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위적인 판단을 근거로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자는 주장은 힘을 잃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인도주의를 이유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음을 우리는 유럽 사례에서 충분히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민자 정책을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폐쇄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저출생, 일자리 문제 등 여러 곳에서 이민자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세계적 흐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이민자 수용 문제가 이미 선택의 영역을 넘어선 필수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스웨덴, 영국 등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주의 기술이민제도입니다. 엔지니어, 의사, 간호사 등 기술직군 이민자를 수용한 호주는, 몇몇 노동자들이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비교적 뛰어난 성과를 보여줬습니다. 물론 호주의 경우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난민을 위주로 수용한 유럽의 사례와 비교하기 힘들겠지만, 한국은 아직 이민자 수용 자체에 소극적임을 고려할 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민자 수용 정책의 핵심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나라에서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많은 유럽 국가들은 다시 이민자를 수용하지 말자며 대립하고 있고, 호주는 비교적 별다른 갈등 없이 제도를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단순히 이민자나 난민을 수용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것은 현장에서 그들을 마주해야 하는 주민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입니다. 주민들이 느끼는 실체적 위협을 덜어줄 방안이 필요합니다.
최근 열린 대한변호사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토론회 <혐오와 차별을 넘어 지역 인권증진으로>에서는 대한변협에서 꾸린 ‘대구 이슬람사원 건축 갈등 조사단’의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주요 골자는 북구청의 초기 역할 실패가 갈등 격화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이민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정책의 부재입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그 과정을 겪은 국가들은 이를 경험 삼아 다시 새로운 제도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주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고, 때로는 국가의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를 회피한 국가는 새로운 길을 잡아갈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도 늦지 않게 이민자 문제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